태국의 기원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족(漢族)의 남진에 밀려 중국의 양쯔강[揚子江] 남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로 이동하여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 윈난[雲南]의 남소국(南詔國)이 타이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라는 설이 있으나 반론도 많다. 어떤 역사가들은 몬족(버마人)들이 이 지역을 물려받아서 거주해 태국이 처음으로 우통에 수도를 둔 수바나 부미 몬 왕국에 의해 통치를 받았었다고 믿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고고학자들은 반치앙의 북동쪽 작은 마을 근처에서 약 5천 6백 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들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들과의 접촉을 통해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사상들은 태국의 문화적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타이"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① 드라바티 몬 왕국 (550년-1253년)
: 후난황제가 3세기후 지배해 왔으며 나콘파톰이 수도로, 675년 드라바티가 크메르황제하에 총독의 임기를 행사했다(11세기). 차오프라야 유역의 수로를 이용할 수 있는 농업의 가능성에 쌀을 경작했던 태국인들은 11세기에 중국 남쪽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초 , 타이족은 북쪽의 란나 , 파야오 , 수코타이에 조그만 공국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1238년에 이르러서는 2명의 타이 지도자들이 크메르 영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최초의 독립왕국인 수코타이(행복의 새벽이라는 의미)를 세웠다.
② 수코타이(시암족) 왕국(1257-1350)
: 타이 역사상 정통 왕조로 차오프라야 강 유역을 따라 발전하게 되는 타이 왕국의 기초가 되었다. 태국의 국교인 테라바다불교(Tehravada Buddhism)를 확립하고 , 태국 문자의 발명 , 미술 , 조각 , 건축과 문학 등 태국 예술 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③ 아유타야 태국왕조(1350-1767)
: 수코타이 왕조에 이어 아유타야 왕조(1350∼1767)는 위계전 제도(位階田制度)를 비롯한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4세기에는 수코타이와 다른 그 밖의 작은 왕국들을 차례로 병합해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1350년에 건립된 이 아유타야 왕국은 차오프라야 강 남부 멀리까지 영토 하에 두었다.
1767년 버마의 침략을 받기까지 태국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아유타야의 붕괴는 프랑스의 파리나 영국 런던의 붕괴와 비견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후에 탁신 왕이 버마를 몰아내고 수개월 만에 타이왕국을 재건하였다.
④ 방콕시대(1767-1932)
: 부르만들은 1767년 아유타야의 수도를 함락시켜 새로운 지역, 즉 현재의 방콕으로부터 차오프라야를 건넌 톤부리에 새 수도를 설립했다. 톤부리 왕조는 1대(代)로 끝나고, 그 부하인 장군 차크리가 1782년에 방콕에서 왕조를 창시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차크리 왕조(방콕왕조)이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유럽 열강들의 압력이 드세어져 1855년에 영국과 보링 조약을 맺고 자유무역항과 치외법권을 승인하였다. 출랄롱코른왕(라마 5세)은 사법·행정제도 개혁과 함께 근대화를 실행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이용하여 식민지화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 뒤 왕족 전제(專制)에 의한 정치적 부패에 불만이 높아지자 1932년 6월 24일 인민당이 무혈 쿠데타에 성공, 12월에 헌법을 공포하고 입헌군주국으로서 발족하였다.
⑤ 근대(1932 ~ 현재)
: 혁명은 또한 군대와 오늘의 태국정치가 계속될 수 있도록 정부를 제재하는 시민단체 사이에 분쟁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통치가 끝난 후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쎄니 프라모지하의 시민정부가 국가를 다스렸다. 1975년에 치러진 선거는 다수당 창당에 실패해 쎄니프라모지와 쿡크릿 파라 모지가 각각 연합정부를 만들었으나 분단된 국가를 통일하는 데는 실패했다.쎄니는 1976년 공직에 재선됐으나 나중에 그해 쌍가드 차롤유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반란으로 쫓겨났다. 타닌크라이비치엔이 수상이 되었으나 1977년에 크리앙삭 초마난 장군 지휘하의 무혈반란으로 대치되었다. 1979년 선거는 크리앙삭을 선거로 선출된 정부의 수상으로 공직에 재임시켰으나 1980년에 사임했다